[초대석]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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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석]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
  • 이지영 기자 ljy@cstimes.com
  • 기사출고 2024년 03월 26일 15시 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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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슈머타임스=이지영 기자 |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이 지난 4년 간 금통위원으로서의 시간을 비틀즈의 곡과 함께 마라톤을 뛰는 마음에 비유했다. 팬데믹 시대와 함께 했던 통화정책의 결정은 그만큼 힘들었지만 30년을 '한은맨'으로 보낸 만큼 그동안의 결정은 모두 후회 없는 선택이었다는 생각이다.

서영경 위원은 4년의 임기를 거쳐 내달 퇴임을 앞두고 '팬데믹 위기는 무엇을 남겼는가?:통화정책 경험과 과제'를 주제로 26일 간담회를 가졌다.

서 위원은 팬데믹 위기 이후 통화정책의 역할과 교훈에 대해 설명하고 나아갈 과제도 제시했다. 서 위원을 만나 자세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Q. 이번 자리를 만들게 된 배경은.

== 팬데믹 위기는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의 적극 대응에 힘입어 경제적 파국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뒤이은 전쟁과 인플레이션 충격은 글로벌 경제를 또 다른 어려움에 빠뜨렸습니다. 가파른 금리인상과 공급망 회복에 힘입어 지난해 하반기 이후 인플레이션이 완화국면에 접어들었으나 연이은 충격이 세계 경제에 가져온 후유증과 잠재 위험은 아직도 남아있습니다. 팬데믹 위기와 인플레이션 충격의 대응과정에서 통화정책은 어떠한 역할을 했으며 중앙은행이 얻은 교훈은 무엇인지 돌아보는 관점에서 한국은행 금통위원으로서 수행한 지난 4년간의 통화정책 경험과 이를 통해 얻은 교훈을 간략히 정리하고 싶었습니다.

Q. 코로나 발생 직후 한은의 대응은 어땠나요.

== 초저금리기를 2000년초~2021년 7월로 구분하고 있습니다. 이 시기 코로나19 발발 직후 중앙은행들이 글로벌 금융위기(GFC)의 경험을 바탕으로 신속하게 초완화 정책기조로 전환했습니다. 한국은행도 코로나19 발생 직후 기준금리를 1.25%에서 사상 최저수준인 0.5%로 인하했는데 2020년 4월 첫 금통위에서 25bp 인하 결정에 참여했습니다. 동시에 국고채 단순매입, 증권사 대상의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을 통해 시장유동성 공급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금융시장의 유동성 수요에 제한 없이 부응하는 '전액공급방식의 정례 RP매입'은 시장심리 안정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중요한 부분 중에 하나는 재정정책과의 공조를 통해 기업 및 취약부문에 대한 신용정책을 실시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은행은 사상 처음으로 회사채·기업어음(CP) 매입기구(SPV)를 정부와 함께 설립·운영했습니다. 유동성 조달이 어려워진 저신용 기업도 지원했습니다. 또한 금융중개지원대출 한도를 18조원 확대해 대면서비스 위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소상공인에 대한 대출을 제공했습니다.

팬데믹 기간이 예상보다 장기화되면서 실물과 금융간의 상충(trade-off) 문제에 직면하기도 했습니다. 위기 초에는 적극적인 시장안정화 조치가 필요했지만 금융불안이 진정된 이후에도 초완화적 통화정책이 1년 이상 유지되면서 경기가 회복되지 않은 상황에서도 주택가격의 오름세가 크게 확대됐습니다. 다만 경제성장률이 2020년 –0.7%로 외환위기 이후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나타낸 데다 변종 코로나 재확산 등으로 불확실성이 너무 컸기에 초저금리 유지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Q. 금리인상기 한은의 통화정책은.

== 팬데믹 직후 적극적 통화·재정정책은 경기가 예상보다 빠르게 회복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다만 당초 예상보다 코로나19가 장기화되면서 수요와 공급간의 회복 시차가 전례없이 커졌고, 이는 인플레이션 압력을 갑자기 높이는 상황으로 이어졌습니다. 수십 년만의 고인플레이션에 대응하여 선택한 통화정책은 물가안정을 위해 기준금리를 0.5%에서 3.5%로 빠른 속도로 인상한 것입니다. 2021년 2/4분기에 실물경제는 코로나 이전 GDP 수준을 회복했으며, 소비자물가는 2.5%로 높아진 가운데 자가주거비 상승으로 인해 체감물가와의 괴리가 컸습니다. 이에 따라 2021년 8월 기준금리 인상을 시작하고 10월 인상 소수의견을 제시한 데 이어 11월 이후 8차례 추가 금리인상 의견을 제시했습니다.

특히 러-우 전쟁 이후 국제유가 급등 등 공급충격이 중첩되어 물가상승률이 6%대로 높아짐에 따라 22년 7월 사상 처음으로 빅스텝(+50bp)을 결정했습니다. 한국은 주요국에 비해 물가상승 압력이 크지 않았으나 금융불균형 문제가 심각했습니다. 2021년 8월 주요국 중앙은행중 처음으로 금리인상을 시작한 것은 경기상황이 위기국면을 벗어난 가운데 집값 상승과 가계부채 문제가 심각했기 때문입니다. 금리 인상에 따라 2022년 하반기에 PF시장을 중심으로 금융불안이 확산되자 RP매입, RP대상증권 확대 등을 통하여 시장안정화를 도모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한은의 시장유동성 지원정책이 거시적 긴축정책과 배치된다는 반대의견도 있었으나 금리인상의 파급경로가 원활히 작동하기 위한 보완적 역할이 크다는 점을 근거로 동 유동성 지원 정책들을 지지했습니다.

Q. 지난 통화정책을 돌아봤는데 앞으로의 과제를 제시하자면.

== 과거 위기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위기는 많은 경제적·사회적 비용을 수반하지만 이를 통해 시스템을 개선하게 되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번 위기의 경험을 통해 얻은 통화정책적 과제는 △유연한 정책대응 필요 △산업·고용 등 미시적 상황에 대한 이해 확대 △금리정책의 파급시차 축소 감안 △대차대조표 정책 확장 필요 △통화정책에 있어 금융안정도 적극 고려 △환율의 대외충격 흡수기능 확대 △통화정책의 커뮤니케이션 강화 등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으로의 통화정책 방향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 한국은행은 팬데믹 위기와 뒤이은 인플레이션 충격이라는 전대미문의 상황에 대응해 물가안정을 도모하면서 대내외 금융안정을 달성하는 어려운 책무를 잘 수행해 왔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통화정책은 아직도 많은 난제를 안고 있습니다. 물가가 안정화되고 있으나 여전히 공급충격 관련 불확실성은 높으며 민간부채 취약부문, 부동산PF 등을 둘러싼 금융 상황도 안심할 수 없습니다.

또한 물가와 가계부채의 상승률은 낮아졌으나 금융기관 가계대출은 2023년 월평균 1.0조원씩 늘어났으나 금년 1~2월중 월평균 0.2조원 감소로 돌아선 상황입니다. 민간의 실질구매력 약화와 내수회복 지연 가능성도 우려됩니다.

중장기적으로는 기술변화, 저출산·고령화, 글로벌 공급망 변화, 기후변화 등 구조변화로 통화정책 여건에도 많은 변화가 예상됩니다. 이에 대응하여 앞으로도 거시경제상황은 물론 산업·고용 등 미시적 영역에 대한 연구도 강화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통화정책의 파급경로 축소 등 여건변화를 반영하는 동시에 대차대조표 정책, 거시건전성정책, 외환정책 등 여타 보완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활용함으로써 통화정책의 유효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Q. 다음 달 퇴임하게 되면 여성 금통위원이 한 명도 없는 상황입니다. 여성 금통위원의 필요성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 필요하다고 봅니다. 첫 번째로 다양성 제고 측면에서 중요하다고 보고요. 또 개인적으로는 산업계에 몸담았던 분이 오면 그것도 균형적인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두 번째는 여성 고위직이 계속 늘어나는 모습을 보여야 할 것 같습니다. 한국은행도 입행하는 단계에서는 여성이 한 40% 정도 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여성 고위직이 저절로 늘어나느냐 하면 그렇다고 보지 않습니다. 일·가정 양립이 우선 어렵고 또 좋은 경력을 쌓을 기회가 생각보다 그렇게 쉽게 주어지지 않는 어려운 여건이 있습니다.

지난주에 미국 출장에서 여성경제학자들을 만나서 얘기할 기회가 있었어요. 심지어 그곳에서도 20대, 30대에서는 별로 남성들과 열정의 차이가 없는데 40대가 되면 여성들의 열정이 줄어들고 갭이 보인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일·가정 양립을 하고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그런 열정 자체가 약화되는데 여성 고위직이 계속 유지되고 본인의 '롤모델'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면 후배들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래서 여성 금통위원은 계속 유지되고 또 확대되면 좋겠습니다.

Q. 퇴임을 맞이하는 소회가 궁금합니다. 앞으로 거취는 어떻게 하실 계획이신지요.

== 제가 30년을 넘게 소위 얘기하는 '한은맨'으로서 일했습니다. 후회없는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돌아보면 한은과 함께 성장해 온 것이 아닌가 합니다.

지난 4년 간의 통화정책을 돌아볼 때 비틀즈의 옛 노래가 생각났습니다. 'The Long and Winding Road'라는 곡인데요. 마치 마라톤을 뛴 것 같은 심정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길이 굉장히 '롱 앤 와인딩 로드'여서 길었고 구불구불해서 끝이 안 보였다는 것, 앞이 안 보였던 것 같습니다. 4년을 돌아보면 결과적으로는 큰 실수는 없었던 것 같은데 '참 어려웠다'는 생각이 듭니다. 마라톤을 뛴 사람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라스트마일'에서는 결승점이 보이기 때문에 오히려 쉽다고 얘기하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제가 느끼기에는 여전히 길이 울퉁불퉁하고 또 끝도 잘 안 보이기 때문에 어려움이 크다고 느꼈습니다. 또 떠나는 마음이 가볍지만은 않고요.

이후 거취는 당분간 쉬면서 앞으로의 진로를 고민해볼 생각입니다. 오늘처럼 4년의 경험을 조금 더 자세히 써본다든가, 구조적인 이슈와 외환시장에도 관심이 있어서 그에 대해 써본다든가 하는 등 이코노미스트로서 역할 기여에 대해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 서영경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은?

서영경 한국은행 금통위원은 1963년생으로 창문여고를 거쳐 1986년 서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했다. 이후 1994년 미국 조지 워싱턴 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고 2011년 동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88년 한국은행에 입행해 2008년 경제연구원 국제연구실장, 2010년 국제국 국제연구팀장, 2012년 금융시장부장을 거쳐 2013년 여성 최초 한국은행 부총재보 자리에 올랐다. 2016년 고려대학교 경제학과 초빙 교수를 역임한 후 2018년 대한상공회의소 지속성장이니셔티브(SGI) 원장으로 재직했다. 이후 2020년 대통령 직속 북방경제협력위원회 위원을 거쳐 같은 해 4월 사상 세 번째로 여성 금융통화위원회 위원이 됐다. 내달 4년의 임기 만료에 따라 퇴임을 앞두고 있으며, 코로나19 시기 금통위원으로서 통화정책 결정에 많은 기여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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