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리스본의 방랑자,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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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한의 세상이야기] 리스본의 방랑자, 페르난두 페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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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소아(Pessoa)는 포르투갈어로 '사람' 이다. 휴머니틱한 이름을 가긴 작가 페소아는 리스본을 사랑했다. 태어나고 잠시 떠났다가 짧은 생을 마감할 때까지 이 도시를 지켰다. 인간의 지독한 고독과 허무를 찾아 날마다 카페와 골목을 해매였다. 사는 것은 무엇이고 나라는 존재는 어떤 실체인가. 인생이 과연 어디로 가면서 어떻게 마무리 짓는 것인지를 탐구했다. 결론은 없었다. 해답이 없는 영역이다. 그러나 수많은 질문을 던져주고 생을 마감했다.

페르난두 페소아, 정확하게는 페루난두 안토니오 노게이라 페소아(1888-1935)다. 시인으로 작가로 문학평론가로 살다가 47세의 젊은 나이에 리스본에서 생을 끝냈다. 그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명작 '불안의 서(書)'는 죽고 나서 한참 후에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 오늘날 수많은 젊은이들의 애독서가 되기까지 적지 않은 세월이 걸렸다.

"우리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는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어떤 사람에 대해 우리가 갖고 있는 생각이다. 이는 우리가 만든 이미지다. 결국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다"

이 몇 줄의 묘사가 나를 리스본으로 데려갔다.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그의 흔적을 만날 수 있었다. 카페 '마르티노' 는 아직도 문을 열고 있었다. 15세기 대항해 시절의 포르투갈 전성기를 회한하듯 만들어진 너른 광장에는 이베리아 반도 서쪽의 강렬한 태양이 쏟아지고 있었다. 생전의 페소아는 자주 커피를 마셨다. 이웃 동네의 또 다른 카페 '브라질레이라' 에도 자주 들리곤 했다. 이제는 리스본을 찾는 여행객들의 순례코스가 되었다.

 

▲리스본의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리스본의 코메르시우 광장에서

인간은 누구나 루틴에서 벗어나는 일탈을 꿈꾼다. 내가 있어야 하는 무대에서 내려와 아무도 나를 알아보지 못하고 결정해야 할 무엇도 없는 상태 속에 나를 집어넣고 싶어 한다. 나는 나로 존재하는 것이 피곤해 나로 존재하지 않고 싶어 한다. 나를 벗어나 조금이라도 다른 존재로 살아보고 싶을 때 나는 여행을 떠난다. 누군가 내 삶으로 나를 때리는 듯한 느낌과 강박은 내가 계속 고민해오던 일상의 문제다. 페르소아는 그 문제에 대해 나의 고뇌를 이미 오랜 전에 간파하고 있었다.

리스본 시내 언덕으로 올라가는 낡은 전차는 오래 전 이도시가 흥청거렸을 때의 추억을 간직하는 풍경이다. 철길과 아스팔트가 뒤 섞인 길을 따라 세계에서 가장 오래(最古) 된 서점 '베르트랑' 에 들렀다. 500여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곳에서 페소아의 작품들을 보고 싶었다. 별도 코너에 진열된 작가의 시집과 평론, 일기 등 이 가지런히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르트랑 서점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베르트랑 서점

포르투갈이 제국으로 전진하던 시기 지식의 보고 역할을 하던 베르트랑은 아직도 활기가 넘쳤다. 세상 사람들이 리스본 서쪽에 절벽 같은 지구의 끝이 있다고 믿었던 불안한 시절 미지의 세계로 나가도록 지혜를 주던 곳이었다. 엔리케 왕자의 꿈을 실현시킨 탐험대들은 리스본 항구 '디스커버리 타워' 에 남아있었다. 바닷가 '밸렝' 지구에는 제국의 기상이 아직도 생생했다.

페소아의 작품 세계는 남아공에서 자란 청소년 시절의 세계관이 바탕이었다. 2살 때 아버지가 죽고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간 남아공 더반에서 10년을 보냈다. 양아버지는 포르투갈의 남아공 주재 영사였다. 에드가 앨런 포우나 워즈워드, 키이츠 등의 문학에 빠져 살던 아프리카 남단의 시간은 고독했다. 잘 어울리지 못해 어디에도 속하기 힘든 내성적인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빛나는 눈동자를 가진 이방인이자 경계인이었다.
 

▲페르난두 페소아의 생전 모습과 그의 책 '불안의 서'
▲페르난두 페소아의 생전 모습과 그의 책 '불안의 서'

"인생은 깊이를 알 수 없는 심연으로 가는 마차를 기다리며 머물러야 하는 여인숙이라고 생각한다. 나를 어디로 데려갈 것인지 알 수 없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니까"

"나는 나도 아니고 타인도 아니고 그 중간쯤에 있는 무언가 이다"

"나는 내가 얼마나 많은 영혼을 지녔는지 나도 모른다. 나는 매순간마다 변했다. 끓임 없이 내가 낯설다. 난 나를 본적도 찾은 적도 없다. 그토록 많은 것이 되다보니 가진 것은 영혼뿐이다. 영혼이 있는 사람에겐 안정이 없다. 무언가 보는 사람은 바로 그가 보는 그것, 무언가 느끼는 사람은 더 이상 그가 아니다"

압생트 한잔을 털어 넣고 늦은 밤 타자기를 두들겨 쓴 글들은 가슴을 후비며 내안으로 들어왔다. 1900년대 초의 리스본 모습이 중첩되어 희미하게 깔리고 있다. 인간은 누구나 지속적으로 개성을 창조 한다. 그때마다 스스로의 인간자체는 존재하지 않는다. 창조를 위해 인간은 모두 스스로 파괴되어 가는 존재다.

헤밍웨이의 말처럼 "인간은 모두 부분적으로 부서져 있다. 그사이 사이로 빛이 들어오고 있다". 빛을 받아들이기 위해 우리는 살면서 적당히 파괴되어 간다. 나도 언제나 부분적인 파괴를 경험해왔다. 그것을 사람들은 운명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살아서 보다 죽어서 인정받고 시간이 흐를수록 더 또렷해지는 작가. "명성과 성공, 무지와 편리함, 요란함을 우선시 하는 시대에 여기 완벽한 해독제가 있다. 어둠, 실패, 지성, 곤경, 침묵을 찬송하는 노래가 있다"(존 란체스터). "비현실적인 일상과 현실적인 허구 사이에 그의 이야기가 있다"(옥타비오 파스)

 

▲리스본 알파지구에서 바라본 항구의 풍경
▲리스본 알파지구에서 바라본 항구의 풍경

페소아는 무려 75개의 다른 이름으로 짧은 생을 살았다. 남아공 더반에서의 학창시절부터 필명이나 익명으로 기고하고 철저히 자신을 드러내지 않았다. 할베르투 카에이루, 히카루도 헤이스, 알바르 드 캄푸스. 이 세 이름은 그가 가장 즐겨 쓴 필명들이다. 자신을 여러 개의 인격으로 분화시켰다고 말한다. 아직 남아있는 일기와 비망록, 2만 페이지 이상의 원고들은 처리방법을 찾고 있다.

마치 과거의 꿈에서 깨어나 이뤄질 수 없는 꿈에 빠져든 것처럼 포르투갈의 환생을 꿈꿨다. 전성기 역사시대의 세바스티앙 왕을 기억하려고 노력했다. 한때 그는 리스본 관광안내서를 영어로 만들기도 했다. 이 도시에 대한 애착 때문이었다. 골목을 서성이며 리스본의 불안과 고독, 결핍을 관찰했다. 페소아는 리스본을 제임스 조이스의 더블린, 카프카의 프라하 같은 곳으로 만들었다.

에릭사티의 느린 피아노 연주 '짐노페디(스파르타 청년들의 알몸축제)' 가 귓전에서 맴돌았다. 4차원의 프랑스 작곡가가 만들어낸 피아노곡은 페소아의 세계에 정확히 연결되었다. 너무 늙은 시대에 너무 젊게 와서 힘들다던 피아니스트의 느린 건반 소리로 나는 잠깐씩 마음의 안정을 되찾곤 한다. 어떤 때 들으면 더 우울해진다. 짐노페디 선율사이에 걸쳐진 페소아의 자아진단과 고독한 정신세계는 묘한 교집합을 형성한다. 소리는 가끔 나에게 고독과 향수를 달래주는 아편이다.

"엉망진창인 이 세상에서 온전한 이해를 포기할 권리, 삶의 숭고함에 나를 헌납하여 삶의 노예가 되지 않기 위하여 체념을 선택할 권리, 그러니까 한없이 나약해질 권리, 끝없이 불안할 권리, 권태로울 권리와 공허할 권리, 그리하여 질 나쁜 인간의 세상과 거리를 두고 질 좋은 고독을 향유할 권리를 얻어낸 쾌락, 보통의 짐작과 아주 다른 종류의 해방을 맛보는 쾌락" 그 시대에는 통하기 어려웠던 페르소아의 생각에 나는 기꺼이 동의한다.

햇살은 나를 다시는 과거로 돌아가지 못하게 할 것 같았다. 리스본의 유혹적인 햇빛. 코메르시우 광장을 가로지르며 이 곳에서 방황했던 페르소아의 시대를 상상했다. 건조한 계절의 서울은 너무 멀게만 느껴졌다. 

 

▲페소아가 잠들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페소아가 잠들어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페소아가 묻혀 있는 제로니무스 수도원 건물은 리스본 중심지에 자리하고 있었다. 무덤이라면 바위 절벽 뒷자리나 언덕 꼭대기, 산골짜기를 연상했던 생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자동차와 사람들이 붐비는 시가지의 수도원은 뜻밖이었다. 페소아는 15세기 대항해 시대 희망봉을 돌아 인도항로를 발견한 이 나라의 탐험가이자 국민적 영웅 '바스코 다 가마' 와 나란히 제로니무스 수도원에서 영생을 누리고 있었다.

어떤 사람은 커다란 꿈을 품고 살아가 그 꿈을 잃어버린다. 어떤 사람은 꿈 없이 살다가 그 꿈을 잃어버린다. 자신을 안다는 것은 길을 잃는다는 뜻이다. "너 자신을 알라" 는 신탁의 언어는 인간에게 참으로 어려운 과제다. 가족도 아는 사람도 하나도 갖지 않은 쾌적함, 그 기분 좋은 추방의 느낌은 집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다는 희미한 불편함을 덮고도 남는다.

"내 영혼아 죄를 범하라. 스스로에게 죄를 범하고 폭력을 가하라. 네가 그렇게 행동하지 않는다면 나중에 너 자신을 존중하고 존경할 시간이 없을 것이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번, 단 한번 뿐이므로. 네 인생은 이제 거의 끝나 가는데 너는 살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았고 행복할 때도 마치 다른 사람의 영혼인 듯 취급했다. 자기 영혼의 떨림을 따르지 않는 사람은 불행할 수밖에 없다"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고백록 중에서)

나에 대한 폭력은 익숙한 곳으로부터 멀어져보는 것이다. 아무런 연고도 없고, 반드시 떠나야 할 특별한 이유도 없는 곳으로 때가 되면 떠나고 싶은 것은 내면에 뭉쳐져 있는 나 자신의 결핍 때문일 것이다. 나는 인생에서 가능하면 내 영혼의 울림을 쫓아가고자 했다.

나는 페소아의 일기장을 들고 리스본을 걸었다. 살다가 우연히 알게 된 작가, 그의 도시를 찾아 사람들로 가득한 텅 빈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결국 나의 내면에서 우연과 시간은 다른 단어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완벽한 불안과 고독 속에서 건져진 언어는 역시 희망이었다. 페소아를 따라 지나오는 동안 경험한 잔잔한 변화다. 적어도 인간은 살아있는 동안 불안의 치유방법으로 마지막 희망을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하는 생각. 

"인생사 모든 것은 결국 내 안의 문제다.
상처 받으면 비극이고 상처를 안으면 예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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