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면 살고 닫으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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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면 살고 닫으면 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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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2.27

 

열면 살고 닫으면 죽는다

 

 

사카모토 료마(坂本龍馬)에 푹 빠진 지 한 달 만에 겨우 탈출했다. 바쿠후(막부) 격동기, 놀랍도록 유연한 사고와 강한 인내력으로 일본을 '세탁' 해 근대국가로의 발판을 다진 풍운아. 메이지 유신에 불을 붙인 영웅 료마의 일대기를 NHK가 제작해 숱한 화제를 뿌렸던 대하드라마 '료마전(龍馬傳)' 48회분 모두를 보는 데는 적지 않은 시간이 걸렸다. 료마 역을 맡은 국민배우 후쿠야마 마사하루의 연기가 단연 눈길을 끌지만 시대상을 읽어서 오늘을 다시 보게 하는 드라마 전개는 호기심을 맹렬하게 자극했다. 1962년 시바 료타로는 산케이 신문에 '료마가 간다 '라는 역사소설을 연재해 그를 현실의 인물로 끌어냈다.

이 소설전기는 지금까지 줄잡아 1억 부가 팔려 나갔다. 일본사람들은 '료마전설'을 종교처럼 믿고 있다. 아사히 신문주최로 '지난 천 년 동안 가장 존경하는 일본정치가 투표' 에서 료마는 1위를 기록했다. 경단련의 역대 회장, 소프트뱅크의 손정의를 비롯한 수많은 일본 지도자들이 그의 초상화를 집무실에 걸어 두고 신격화 하는 데는 까닭이 있다, "죽더라도 앞으로 쓰러지겠다" 며 개방으로 나라 살리기에 목숨을 걸었던 짧은 일생이 일본시청자들을 뜨겁게 사로잡았다.

150년 전, 바쿠후(幕府)정치체제의 일본은 개방 압력에 시달렸다. 페리제독의 흑선함대가 다가와 대포를 쏘며 통상을 요구했다. 미국, 네덜란드, 프랑스 해군이 항구를 개방하라고 목을 조르는데 사무라이들만 우왕좌왕 날뛰던 어지럽던 시절이다. 교토에 뿌리를 둔 도쿠가와 요시노부의 막부를 비롯해 300여개의 무사조직이 다투던 권력을 천황에게 돌려주는 이른바 '대정봉환(大政奉還)'의 시기. 시골뜨기인 사카모토 료마가 에도에 올라와 갖은 고생과 설득 끝에 구국의 결단을 이끌어내 일본 근대화의 기틀을 마련한다. 260년에 걸친 사무라이 정치를 끝장내기 위해 동분서주하는 료마의 고뇌와 땀방울이 드라마를 적신다.

2만 명의 사무라이를 거느린 에도시대 최대의 막부 도쿠가와를 대면한 료마는 목숨을 걸고 그를 설득한다.

"결단은 지금이 아니라 앞으로 100년, 200년 후의 일본을 운명 짓는다. 당신의 결단은 개항을 외치는 외국군대를 싸우지 않고 물리친 영웅으로 기록 될 것이다. 역사의 흐름과 대의를 따르라" 도쿠가와는 묻는다. "다이묘도 사무라이도 모두 사라지면 누가 남는가" 눈을 부릅뜬 료마가 답한다. "일본인, 근대화된 일본 사람들이 남는다" 그날 밤 료마는 서양에서 수입해온 소형망원경을 들고 부하들과 밤하늘의 별을 본다. 별에는 꿈이 담겨 있기 때문이었다. 좀 더 가까이서 별을 관찰하려고 지붕으로 기어 올라간 그가 하늘을 향해 절규한다.

"나카사키를 열어 개항을 하는 것만이 일본을 살리는 길이다"

대정봉환으로 중앙집권적 근대국가의 틀은 마련됐지만 주인공 료마는 33살에 수구파에 살해된다. 선혈이 낭자한 다다미 바닥으로 그가 그렸던 근대국가 일본의 헌법단상과 양원제 실행 등의 메모지가 나부낀다. 시청자들은 이 대목에서 통곡했다고 한다. 시바 료타로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묘사했다. "하늘이 이나라 역사의 혼란을 수습하기 위해 이 젊은이를 지상에 보냈고 그 사명이 끝나자 서슴없이 하늘로 다시 데려갔다" 고. 왕권을 회복하고 메이지 유신으로 이어진 개방은 그 후 100년 동안 일본을 세계의 선진국으로 우뚝 서게 했다.

비슷한 시기, 강화도 일대에 서양함대가 대포를 앞세우며 다가왔다. 조선 조정은 발칵 뒤집혔고 고심 끝에 쇄국을 결단한 대원군은 재래식 무기로 맞섰다. 결과는 병인양요, 신미양요, 임오군란, 갑신정변의 혼란으로 이어져 나라는 기울고 죄 없는 백성들만 피폐해져 갔다. 상처투성이의 왕조를 붙들고 개국만은 안 된다며 목숨 걸고 반대하는 바람에 조선은 쇠락을 면할 길이 없었다. 결국 개방을 택하고 서구화로 앞서간 일본 제국주의의 강점기를 맞고야 만다.

100년의 세월이 흐른 뒤, 양국의 운명은 엇갈린다. 미국에 필적하는 경제력으로 무역을 제패했던 일본은 더 이상 서양에서 배울 것이 없다며 소극적으로 안주했다. 주력 10대 산업이 이미 세계를 정복한 뒤였다. 이제 서양과 교류하지 않아도 일본이 모든 것을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일본일극주의' 주장들이 쏟아졌다. 이 같은 사고는 1980년대 후반부터 '헤이세이(平成) 불황'으로 이어졌다. 그로부터 20여 년 후 소니, 일본항공, 닌텐도가 무너졌다. 미국 유학생 10만을 넘어선 중국은 세계를 호령하는데 사우디아라비아보다 적은 유학생에 안주했던 일본은 인재가 줄고 패배주의가 난무하는 어두운 터널을 통과 중이다.

반면 개방으로 돌아선 한국은 역사 이래 최대의 경제성적표를 내고 있다. 글로벌 10대 무역국 등극에 이어 전자와 자동차, 조선, 무선통신 분야가 세계정상을 달리고 있다. 기술을 구걸했던 삼성전자가 소니를 무너뜨리고 200조 매출을 향해 진격 중이다. 현대자동차가 지구촌 무역의 신화인 도요타를 상대로 정상대결을 벌이고 있다. 중세 이후 제국주의를 경험하지 않고 '10대 무역강국'으로 올라선 곳은 한국이 유일하다. 세계역사는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성공한 국가로 한국을 기록하고 있다.

100년 전 대문을 활짝 열어버린 일본은 살고 문고리를 걸어 잠그려던 조선은 망했다. 100년 후 적극적 개방을 택한 한국은 순항하고 상대적 고립을 택한 일본은 고전 중이다. 개방해서 산 나라는 역사에서 무수히 많다. 로마가 그랬고 몽골제국, 아라비아의 수많은 나라들, 영국, 네덜란드, 최근의 중국과 러시아가 그랬다. 열면 살고 닫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역사가 가르치고 있다. 개방의 변곡점이 극명하다.

지금은 누구도 닫고 살수 없는 시대에 와 있다. 미래학자들은 제조업대신 앞으로는 관광과 금융 서비스 산업이 세계를 휩쓸 것으로 보고 있다. 혈육도 국경도 다 필요 없다. 20년 내에 전 인구의 30%가 자신의 출생지가 아닌 다른 곳에서 이민생활을 할 것이라는 예측을 내놓고 있다. 노동과 수입을 따라 이동하는 현대판 유목민 '노마드'가 있을 뿐이다. 개방과 인구이동에 따른 또 한번의 대격변이 다가오고 있다. 세상은 이렇게 흘러가는데 아직도 FTA가 정답인지 오답인지를 고민한다면 이는 너무도 시대에 뒤떨어진 생각이다.

김경한 컨슈머타임스 발행인 justin747@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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