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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 황금률과 기업윤리는 공존할 수 있는가

2018년 01월 24일(수)
양채열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admin@cstime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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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윤리의 기반으로 간주되는 것이 황금률이다. 황금률은 “자기가 대접받고 싶은 대로 남을 대접하라.”, “자기에게 싫은 일은 남도 시키지 마라(己所不慾 勿施於人).”는 윤리적 원칙이다. 이 원칙은 동양적 ‘역지사지(易地思之)’, 칸트의 ‘보편화 가능성’을 다르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역지사지’는 입장을 바꾸어 생각해본다는 말로, 자기 이해만을 생각하지 말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서 바라보고 판단하면 보다 객관적이고 윤리적인 판단을 하게 된다는 이야기다. 칸트의 보편화 가능성은 “네 행동준칙이 보편적 입법원리가 될 수 있도록 해라”는 말로 요약된다. 이는 ‘자기가 하려는 바를 법으로 만들어서 다른 모든 사람도 그렇게 해도 되겠는지’의 여부가 그 행위의 윤리성의 판단 근거라는 이야기이다.

‘자기만 예외이고자 하는 것이 악의 근원이다’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사람들은 법을 지키도록 하고 자기만 자키지 않을 수 있으면, 자기 자신만은 편한 삶을 영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다른 모든 사람도 자기와 마찬가지로 예외이고자 하며, 그렇게 할 수 있다는 점이다. 모든 사람이 똑같이 예외가 되려고 하면 어떻게 되겠는가? 기본적인 사회 유지가 불가능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자기만 예외가 되려고 하는 마음은 악의 근원으로 사회의 근거를 파괴한다.

만약에 나쁜 재료와 조미료 등을 많이 사용하면서 자기나 자기 가족은 먹지 않는 음식을 파는 식당이 있다고 생각해 보자. 이 경우에 역지사지의 정신을 적용하여 자기 자신과 고객의 입장을 바꾸어서 고려할 수 있다면, 자기가 먹지 않을 음식을 남에게 판매하지는 않을 것이다. 또한 보편화 논리로 보면, 자기 또는 자기 가족이 다른 (나쁜) 식당에 갈 수도 있다. 남도 동일하게 할 수 있는 것을 자기가 좋은 일이라고 수용할 수가 없는 자신의 행동은 황금률에 어긋나 비윤리적이다.

대기업의 일감몰아주기는 황금률에 어긋나는 대표적 사례다. 특정한 기업/개인에게 일감과 이익을 몰아주는 행위는 “그룹의 대주주와 특수관계인이 아닌 제 3자에게도 그렇게 하였겠는가?” 하는 질문을 해보면 그 행위의 윤리성을 파악할 수 있다. 이는 전형적인 이해상충문제로 이 또한 보편화 가능성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하는 비윤리적인 행위가 된다.

공교육에 대한 중요 의사결정을 하는 사람은 자기 또는 자기의 2세 또는 3세가 그 의사결정에 대한 결과를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공교육 의사결정에 중요한 사람이 자기자식은 미국에 조기 유학 보내고, 가능하면 해외에 남겨두기 위해 노력한다면, 이 역시 황금률을 어기는 비윤리적 행위일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과연 윤리적인 기업이 생존하고 더 성공적일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사회적 책임을 더 많이 하는 윤리적인 기업이 보다 성공적이어야 한다고 당위적으로는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과연 경쟁적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한 기업의 노력 (원가절감 노력, 로비 등)이 요구되는 상황에서 높은 윤리성을 추구하는 기업이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인가?

이는 ‘공정무역(Fair Trade)’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의 윤리적 수준에 의존할 것이다. ‘공정무역’은 기업의 수익 극대화만을 추구하지 않고 불리한 위치에 있는 저개발국 생산자들의 적정이윤을 보장해주려는 지속가능한 무역으로, 환경보호 및 약자 배려 등의 가치를 추구하는 데에 도움이 되는 제품을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하더라도 구매하는 ‘윤리적 소비자’의 존재가 필수적인 요건이 된다. 즉 바람직하다고 여기는 사회적 가치를 증진하는 기업의 제품에 대하여 더 많은 값을 지불 할 용의가 있어야 가능하게 된다.

궁극적으로 기업의 수준은 국가의 정치 수준과 마찬가지로 구성원의 수준에 의존하게 되는 것이다. ‘공정무역’과 같은 바람직한 방향의 하나는 ‘윤리적 소비’와 ‘사회적 책임 투자’(Socially Responsible Investment: SRI)의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SRI는 투자가가 투자대상을 선택할 때 노동착취, 환경오염 등 사회적으로 해로운 일을 하는 기업은 배제하고 윤리적인 행위를 하는 기업에 선별적으로 투자하는 방식을 말한다.

소비자 운동을 통하여 윤리적인 기업행위를 유도하였듯이 투자자는 SRI를 통하여 윤리적인 기업행위를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윤리적인 투자자가 적당한 수익성을 실현하면 정말 좋은 시도이지만, 투자자가 보다 높은 가치를 위하여 수익률을 포기할 용의가 있을 것인가? 소비자가 높은 윤리성을 추구하는 기업의 제품에 더 높은 가격을 지불할 용의가 있을 것인가? 이러한 윤리적 소비자/투자자는 기업의 윤리경영의 방향에 많은 영향을 미칠 것이다. /양채열 전남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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